♠사진방------/풍경화

용문사

죽향 2012. 4. 12. 21:17

 

천왕목 령목,
신목이라고 불리우는
1,100살이나 먹은 은행나무가 있는
도량 용문사, 정삼품의 벼슬까지 받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나무 중에서 가장 오랜 세월을 살아온 높이 41m, 둘레 11m의
3갈래의 크나큰 줄기로 서있는 은행나무를 보는 순간
역시 듣던 대로 대단한 나무이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던 것이다.

 

수목이
가득찬 심산유곡에
자리한 용문사를 참배차 가게 되었는데,
입구부터 다른 사찰과 다른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사찰입구에는 넓디 넓은 공원이 조성이
되어 있고 박물관이 지어져 있었는데,
용문사 입구 공원에는 천년의
세월을 두고 지새워 오는
동안 많은 시객과
선비들이 용문사를 참배하고
그 아름다움을 찬탄하면서 시를 지었는데,

 

 
중에서
용문팔경 시비 등이
각종 크고 작은 돌에 새겨져 있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이항복, 정약용,
백범 김구 선생 등
우리의 귀에 익은 유명한
분들의 글귀도 함께 하고 있었는데,
마치 시로 단장이 된 조각공원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었다.또한 일주문에는 용문산 용문사를 뜻하여
일주문 두 개의 기둥에 4마리 용이 조각되어 있었으며, 호국령목은
행수라는 태단과 기념비도 세워져 있었는데 1,100살이나
먹은 나무가 되다보니 많은 전설도 함께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이었다.

 

 용문사
일주문에서 사찰까지는
약 2km의 거리가 될 것 같았는데,
우거진 수목과 흐르는 계곡물은 용문팔경의 숨소리를
들려주는 듯 하였으며, 맑고 향기로운 찻집과 굴뚝에서 솟아나는 연기는
용문사를 찾는
선남선녀들의 마음을 더욱더
향기롭게 하여주고 있는 것이었다.붉은 흙으로
포장이 된 도로는 나무로 놓여진 교량과 더불어 자연친화적인
모습을 갖추었고, 용문산 정상까지의 등산시간은 3시간 10분 정도가 소요되고,
한바퀴 일주하는데는 7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고 하였다.

똑똑똑
울려퍼지는 목탁소리와 함께
대웅전 법당에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두 분의
관음상이 좌우로 봉안이 된 것이 특징이고, 새로 지은 8각정 관음전에는
고려 후기
작품의 금동관음불상
(경기유형문화 172호)이 모셔져 있었는데,
이 용문사 도량이 새로운 관음신앙 도량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듯하기도 하였다.일반인들에게
범종을 쳐보도록 개방을 하면서
소원을 이루도록 기도를 시키고
있는 것도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법당마당
가운데는 3층석탑이 세워져 있고
2,000관의 은행나무 큰 범종불사를 모연하고 있는
보살님들의 표정에는 즐거움이 가득하였다. 입구우측에는 용문사 사적비가 있고
보물 제 531호 정지국사 부도 및 비가 사찰 뒤편에 자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맑고 푸른 역사적 사실을 간직한 용문사는 신라 경덕왕(913년)때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경순왕이 직접 지었다고도 하는데,

그후 고려
우왕 4년(1378) 개성 경천사의
대장경을 봉안하기도 하였으며, 조선 태조때
조안화상이 중창하였고, 수양대군이 소헌왕후를 위하여
다시 짓는 등 몇 차례의 중창 및 복원이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때는
의병의
근거지로 이용이 되어
일본군들이 불을 질러 태웠는데
오늘날 모습의 용문사는 1982년경부터 그 모습을
갖추게 되어 약 10여동의 건물이 세워졌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뭐니뭐니해도
용문사는 천연기념물 제 30호인
1,100년이 된 은행나무이기에, 계곡비탈에 서있는
이 은행나무는 천둥과 벼락을 방지하기 위하여 높다란 철탑의 피뢰침을 세워 놓았는데
그 모습이 옥의 티라고 아니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나무를 보호하려니
도리가 없었겠지만 다른 방법으로 이 은행나무를 보호할 수가
없는지 사찰 경관상이나 은행나무 미관으로 보았을때
흉물 아닌 흉물같이 서있어서 대단한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은행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의 태자 마이태자가 나라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중 실은 은행나무라고 하기도 하고 의상대사가 잡고 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살아서 오늘날 1,100살이나 된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라에 변고가 있으면
이 은행나무가 큰소리를 내며 울었다고 하며
수많은 애환과 희노애락의 세월을 세상사람들과 함께 해온 것이다. 

 

말로만
들어오던 천년고찰
용문산 용문사를 참배하고
1,100년이 된 은행나무도 바라보면서,
용문팔경의 수려한 아름다움을 이고지고 날아드는
꽃구름과 함께 꽃이되고 새가 우는 좋은 계절에 다시 오겠노라고
산메아리로 약속을 하고 용문산 용문사를 떠나왔던 것이다.

2010. 3. 5용문산 용문사를 참배하고 나서
김 경 천

'♠사진방------ > 풍경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흥사  (0) 2012.04.12
방어산 마애삼존불  (0) 2012.04.12
운강사  (0) 2012.04.12
선운사  (0) 2012.04.12
來蘇寺  (0) 2012.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