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명칭 : 부여 궁남지
주소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외
종목 : 사적 135 전화번호 041-830-2512
지정일 1964.06.10
한자명칭 扶餘 宮南池 -
백제시대의 연못이다. <삼국사기>에 “물을 20여 리나 되는 긴 수로로 끌어들이고 물가 주위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 속에 섬을 만들어 신선이 산다는 방장산을 상징시켰다”고 쓰여 있다. 궁남지란 이름은 왕궁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연못 주위에 우물과 주춧돌이 남아 있고 토기와 기와 조각등이 출토되었다. 뱃놀이를 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연못의 크기와 건물터가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65년~1967년에 1만3천여 평 규모로 복원되었다. 현재 연못 안의 섬에 정자가 있고 목교가 놓여 있다.
궁남지의 옛이름은 ‘마래방죽’으로 불렸는데 주변에 마밭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왕의 부왕인 법왕의 시녀가 연못가에 홀로 살다가 용과 통하여 아들을 얻었다. 그가 뒤에 후손이 없는 법왕의 뒤를 이은 무왕이다. 무왕은 서라벌로 가서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주며 “선화공주님은 밤마다 몰래나와 서동이와 잠을 잔다”는 동요를 퍼뜨려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와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무왕의 탄생 설화는 익산의 ‘마룡지’에도 있다. 똑같은 이야기가 서로 멀지 않은 두 곳에서 전해지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부여 남쪽에 위치한 백제의 별궁 연못이다. 백제 무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궁궐의 남쪽에 연못을 팠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궁남지라 부른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20여 리나 되는 긴 수로를 통해 물을 끌어들였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연못 가운데에 방장선산을 상징하는 섬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로와 물가·연못 속의 섬이 어떤 모양으로 꾸며져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못의 중앙부에 석축과 버드나무가 남아있어 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주변에서 백제 토기와 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연못의 규모 또한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당시에 뱃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크기를 짐작할 뿐이다. 고대 중국사람들은 동해바다 한가운데에 일종의 이상향인 신선이 사는 3개의 섬으로 삼신산이 있다고 생각하여, 정원의 연못 안에 삼신산을 꾸미고 불로장수를 희망했다고 한다. 궁남지는 이것을 본떠 만든 것으로 신선정원이라 불린다. 연못 동쪽에 당시의 별궁으로 보이는 궁궐터가 남아 있다. 현재 연못 주변에는 별궁 안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우물과 주춧돌이 남아있고, 연못 안에는 정자와 목조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궁남지 → 부여 궁남지)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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