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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게재된 미술 문화 이야기

죽향 2012. 6. 2. 18:43

◈신문에 게재된 미술, 문화, 이야기(8회)◈
♣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65] ♣
(KAIST 서양미술사 교수)



- 피카소 '거트루드 스타인' - 1906~1907년, 캔버스에
유채, 100×81.3㎝,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65] 피카소 '거트루드 스타인' ◆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가 그린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화다. 소설가이자 미술 컬렉터였던 
스타인(1874~ 1946)은 미국인이었지만 1903년 파리로 이주해 
생(生)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내며 피카소·세잔·마티스 등 당
시로서는 파격적인 그림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전위적 화가들
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자유로운 영혼과 진보적인 예술관을 
가졌던 그녀의 파리 아파트에는 늘 화가들뿐 아니라 전 세계
에서 모여든 작가와 비평가들이 북적이며 예술에 대해 열띤 
토론과 논쟁을 벌였다. 그들 사이의 대화에서 20세기를 여
는 아방가르드 예술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6년, 피카소는 오랫동안 이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스타인은 갈색과 회색 물감만 뒤섞여 있는 작은 팔레트를 
손에 쥔 화가 앞에서 아흔 번가량이나 포즈를 취하고 앉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피카소는 "아무리 봐도 더 이상 
당신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며 그림에서 얼굴을 통째
로 지우고 자신의 고향인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피카소는 스페인에서 돌아온 후, 스타인이 없는 
상태에서 그녀의 얼굴을 완성했다. 단순하고 육중한 
얼굴형, 뚜렷한 눈썹, 두꺼운 눈꺼풀은 그가 여행 중에 
보았던 고대 스페인, 이베리아 문명의 조각상을 닮았다. 
고대 조각의 강인한 얼굴과 견고한 육체가 뿜어내는 장
엄한 존재감에서 피카소는 스타인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녀의 내면을 발견한 것이다. 스타인은 이후 수많은 
소장품을 내다 팔았지만, 이 초상화만큼은 
평생을 끼고 살았다.
누군가가 피카소에게 스타인이 이 초상화처럼 생기지 
않았다고 말하자, 그는 "곧 그렇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사진 속 스타인의 모습은 피카소의 
초상화와 놀랄 만큼 닮았다.
♣t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12)♣


'청허당 진영' - 유성 그림,
비단에 채색, 160.1×74.9㎝, 1768년, 봉정사 소장

◆ 얼마나 염불했길래 염주 알이
저리 투명할꼬 ◆

짙은 남색의 장삼 위에 붉은 가사가 선명하다. 
녹색 매듭을 지은 금빛 고리는 마치 훈장처럼 반짝인다. 
색깔이 눈에 띄게 대비되어도 들뜬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매무시다. 다만 주인공이 앉은 의자의 장식이 요란
할 정도로 복잡하다. 연두색 바지 아래 보이는 발 받
침대가 의자 다리 노릇까지 하는 특이한 디자인인데, 
초상의 주인공을 귀하게 모시려는 배려가 소도구에
서까지 엿보인다. 왼쪽 위에 표제가 있다. '청허당
(淸虛堂) 대선사(大禪師) 진영(眞影)', 서산(西山
)대사로 널리 알려진 휴정(休靜·1520~1604)의 
초상이다. 스님의 호(號)가 청허당이다.
전국을 주유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던 휴정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주장자를 놓고 칼을 들었다. 임진왜란이 
묘향산에 은거하던 그를 불러냈다. 그가 산문(山門)에
서 전쟁터로 간 까닭은 시로 전한다. '나라를 사랑하니 
종사(宗社)가 근심이라/ 산속의 중도 또한 신하라오. 
그는 평양성 탈환에 공을 세웠고, 정이품 직위까지 받
았다. 휴정의 진영은 지금까지 여러 점 남았는데, 강골
(强骨)의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승군(僧軍)을 지휘한 
이력 때문일 테다. 이 작품은 고승의 진영을 자주 그린 
승려화가 유성(有誠)의 솜씨다. 휴정의 눈맵시는 길고 
부드럽게, 대춧빛 입술은 단단하게 묘사해 
강온(强穩)을 고루 살렸다.
휴정의 손에 든 염주가 하얗다. 얼마나 염불을 해야 염주
알이 저토록 투명해질까. 큰스님은 손에 칼을 들거나 염
주를 들거나, 큰스님이다. 하지만 카드 패를 잡은 큰스님
은 없다. 저지레하다 들킨 스님들 때문에 이번 부처님 오
신 날에는 부처님이 안 오실까 걱정이다. 휴정은 생전에 
초상화가 있었다. 그는 입적하면서 그 초상을 보고 말
했다. "80년 전 네가 나더니 80년 후 내가 너로구나." 
저잣거리의 걱정을 덜어주려면 절집이 
여여(如如)해야 한다.. 
♣이인성 작품♣


- 5일부터 9일까지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전시될
고(故) 이인성 화가의 ‘대구 앞산’(1935년 작).




 竹香